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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 연천군수, 왕징면 찾아 2026년 주민과의 대화 개최

  • 안홍필 기자
  • 입력 2026.01.16 11:26
  • 조회수 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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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저널/취재본부 안홍필 기자】 김덕현 연천군수는 16일 2026년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왕징면을 찾아 2026년 군정과 면 발전을 위한 주민들의 다양한 건의 사항과 의견 등의 현안 해결을 통해 미래 비전을 밝히는 대화의 시간에 윤종영 경기도의원, 김미경 의장을 비롯해 박영철, 심상금, 박운서, 박양희, 윤재구, 배두영 연천군의원과 지역 단체장 및 주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김덕현 연천군수는 새해 인사를 통해 연천군이 2029년 구석기 엑스포를 경기도와 함께 개최하기로 협의했다고 밝혔다. 김 군수는 이번 엑스포가 연천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미래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군수는 “연천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군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야 성공할 수 있다”며 “오늘 이 자리가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이를 적극 행정에 반영해 낙후된 연천이 한 걸음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면민들에게 가감 없는 의견 제시를 당부했다.


지난 2025년 주요 성과로는 농어촌 기본소득 지원 시범사업 2년간 실시를 비롯해, 경기도 그린바이오 사업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과 청년 세대 유입, 전문 인력 육성, 농업 기반 강화와 에너지 불균형 해소 추진을 꼽았다. 또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구상을 바탕으로 관광 활성화를 추진한 결과 관광객 증가와 각종 대외 수상으로 연천군의 경쟁력을 입증했으며, 7,211억 원 규모의 역대 최대 예산 확보로 재정 투자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 군수는 2026년 정책 방향과 관련해 “기다림은 줄이고 편리함은 채우며, 이동은 더 빠르고 생활은 더 활력 있게 만들겠다”고 밝히며, 미래 교통망 확충을 통한 혁신적 교통체계 구축, 미래 인재를 키우는 교육환경 조성, 추모공간 확충, 공공기관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동서를 잇는 철도망 건설, 연천형 농업혁신 추진, 관광자원 세계화, ‘대한민국 생태·평화 정원’ 조성 등 랜드마크 사업을 제시했다.


끝으로 김 군수는 “마부정제(馬不停蹄)의 정신으로 멈추지 않고 전진해 연천군을 한 단계 도약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며 군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김미경 연천군의회 의장은 왕징면 공직자와 주민들에게 지난 한 해 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며 인사말을 전했다.


김 의장은 “오늘 지역 발전을 위해 주민 여러분께서 들려주시는 소중한 말씀을 하나하나 경청해 의정 활동은 물론 군정 운영 방향에 충실히 반영되도록 견인자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연천의 우수한 농산물이 대도시 시장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의회 차원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며 지역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회의 책임과 의지를 강조했다.


김 의장은 또 “앞으로 남은 의정 기간 동안 연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군민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며 변함없는 책임감과 각오를 밝혔다.


윤종영 경기도의원은 왕징면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인사말을 전했다.


윤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특별히 왕징면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없어 주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그동안 연천군 전반의 발전을 위해 도의회와 경기도에 의견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연천읍에 경기도의회 사무실이 마련돼 있는 만큼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찾아와 의견을 전해 달라”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왕징면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일에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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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주민과의 대화 건의 사항으로는 지역 내 도로결빙 해소, 소규모 농산물 가공지원 시설 설치, 임진강 인근 북삼교 관광 활성화 및 주민 안전을 위한 인도와 자전거 도로 설치, 노동천에 생활 오폐수 등 오염물질들이 상당히 많이 발생되고 있어 하수관로 설치, 강서리 인근 예전에 놓은 다리가 좁아 농가들이 피해 입어 교량의 정비 필요, 무등리 지역에 유휴 군부대 시설을 환경 정비 및 활용할 수 있는 공간 조성 필요, 민통선의 초소를 북상하고 민통선 내 원활한 경작을 할 수 있게 해줄 것, 강서.강내 지역에 농사용 배수로의 정비 절실, 초소 출입 시 외국인의 출입이 원활하지 못해 개선, 인근 지역 내 DMZ 전망대 등 출입도 원활하지 못해 이 또한 개선이 절실하다. DMZ 내 도로릐 결빙 해소를 위한 염화칼슘 등 제설 작업의 필요, 영농 작업 시 소각 행위 금지를 위한 행정 필요, 동중리 군부대 유휴부지로 인해 도로 등 가로수의 전장 등 관리가 필요하다 등을 건의했다. 


왕징면은 임진강과 접한 청정지역으로 동쪽은 군남, 남쪽은 미산과 백학, 서쪽은 휴전선, 북쪽은 중면 및 휴전선과 접하고 있으며, 4개리(무등ㆍ노동ㆍ동중ㆍ북삼)는 주민이 거주하고 3개리(강내,강서,작동리)는 군(軍) 통제 민통선 출입 영농지역이다. 19개리는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완충지대 및 북한 지역에 속해 있다. 


본래 마전군 북면(北面) 지역으로, 동막(東幕)·중동(中洞)·애동(艾洞)·징파(澄波)·노동(蘆洞)·무등(無等)의 6개 리를 관할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기존의 6개 리를 동막·중동·애동·노동·징파·무등·외곡(外谷), 유림장(楡林場)리 등 8개 리로 개편하였고, 장단도호부 강동면(江東面) 지역의 고잔(高棧)·기곡(基谷)·산점(山店)의 3개 리를 기곡·기석 (基石)·산점·고왕(高旺)·고잔상·중·하리로 개편하고 강동면을 강신면(江新面)이라 개칭하여 마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전군이 연천군에 편입되면서 북면의 8개 리를 무등·북삼(北三)·노동·동중(東中)의 4개 리로, 강신면의 7개 리를 기곡·고왕·고잔상· 고잔하 4개 리로 축소 병합하였고, 연천군 서면(西面) 지역이었던 계명(鷄鳴)·군영(軍營)· 영정(永貞)·안월(安月)·소포(少浦)·야전(野前)의 6개 리를 강서(江西)·강내(江內) 2개 리로 개편하여 편입시켰으며, 마전군 서면 지역이던 작동리(鵲洞里)를 편입시켜 왕징면이라 하고 총 11개 리를 관할 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왕징면 전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 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하여 행정권이 수복되면서 일부 지역에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동인 접지구의행정구역에관한임시조치법」에 의거, 과거 연천군 서남면(西南面) 지역이었던 귀존(貴存)·가천(佳川)·냉정(冷井)·고장(古莊)· 오탄(伍炭)·장학(獐鶴)·솔현(率賢)·석둔(席 屯)의 8개 리와, 장단군 강상면(江上面)의 임강(臨江)·마성(馬城)·구화(九化)·자하(紫霞)· 갈운(葛雲)·덕적(德積)의 6개 리를 편입하여 25개 리를 관할 했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현재는 18개 리의 법정리를 두고 있다. 이중 무등·동중·노동·북삼 4개 리에만 주민이 입주해 있으며, 그 외 미입주지구인 14개 법정리 중 강서·강내·작동 등 3개 리는 출입 영농만 가능한 지역이다. 왕징면은 동쪽으로 군남면, 남쪽은 미산면과 백학면, 서쪽은 휴전선, 북쪽은 중면과 휴전선에 닿아 있다.


지명유래

-무등리

본래 마전군 북면 지역으로, 무등실이란 골짜기가 있어 무등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림장리(楡林場里)를 병합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면서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어 지금은 왕징면의 중심지가 되어 있다. 현재 1개의 행정리, 8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리

본래 마전군 북면의 지역으로, 목은 이색(李穡)의 5세손 이명흔(李命垠)이 지금의 노동리에 정착하고 보니 갈대가 우거져 있어‘갈울[蘆洞]'이라 이름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왕징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공포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3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중리

본래 마전군 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막리와 중동리를 병합하고 ‘동중리'라 하여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공포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5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삼리

본래 마전군 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곡리*징파리*애동리 등 북쪽 3개 리를 병합했다 하여 북삼리라 이름 지어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 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으나 민통선 지역에 놓여 있어 일부 지역에만 민간인이 입주해 있다. 현재 1개의 행정리, 8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서리

본래 연천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계명리*군영리*영정리를 병합하여 강서리라 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직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 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었지만, 휴전선과 인접한 민통선 지역으로 현재 민간인이 살지 않고 출입 영농만 가능한 곳이다.


-강내리

본래 연천군 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월리(安月里)*소포리(少浦里)*야전리(野前里)를 병합하여 임진강의 안쪽이 되므로 강내리라 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 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 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으나, 현재는 민통선 지역으로 민간인이 살지 않고 출입 영농만 가능한 지역이다.


-고왕리

본래 장단도호부 강동면 기곡리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해 강동군이 마전군으로 편입되면서 강신면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고왕산에서 이름을 따 고왕동이 하나의 법정리인 고왕리가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천군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으나 현재 군사분계선을 포함한 남방한계선의 안에 위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곡리

본래 장단도호부의 강동면 지역으로, ‘터골' 또는 ‘터일'이라는 골짜기가 있어 기곡리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따라 강동면이 마전군으로 편입되면서 강신면으로 개칭되었고, 기곡리는 기곡*기석 2개 리로 분할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강신면이 연천군 왕징면으로 다시 편입되면서 기곡리*기석리*산점리를 병합하고 기곡리라 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다. 그러나 현재 군사분계선이 중앙에 놓여 있어 남북으로 분리되어 있는 완충지대에 속한다.


-작동리

본래 마전군 서면 지역으로, 까치와 닮은 형상의 산이 있으므로 ‘까치울' 또는 ‘작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38선 이북의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 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공포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었다. 현재 휴전선과 인접한 민통선 지역이 되어 출입 영농만 가능한 지역이다.


-고잔상리

장단도호부 강동면의 곶잔리(串棧里)라 하였으나, 조선조 말에 와서 고잔리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따라 강동면 전 지역이 마전군으로 편입되면서 강신면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고잔리가 상·중·하 3개 리로 분할되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연천군 왕징면으로 편입되면서 고잔상·하의 2개 리로 다시 개편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 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공포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잔상·하리 전 지역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완충지대로 지금은 민간인이 살고 있지 않다.


-고잔하리

장단도호부 강동면의 곶잔리(串棧里)라 하였으나, 조선조 말에 와서 고잔리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강동면 전 지역이 마전군으로 편입되면서 강신면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고잔리가 상·중·하 3개 리로 분할되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연천군 왕징면으로 편입되면서 고잔상·하의 2개 리로 다시 개편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 공포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잔상·하리 전 지역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완충지대로 지금은 민간인이 살고 있지 않다.


-임강리

본래 장단군 강서면 지역으로 임강현(臨江縣)에 속했다가, 458년(세조 4)에 장단에 편입되었으므로 임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조치에 따라 하리 일부와 대위면의 나부리 일부를 병합하여 임강리라 하여 강상면에 편입되었다.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하여 연천군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미입주 지역으로 행정리와 반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귀존리

삭녕군 남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 전쟁이 끝난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으나, 1963년 월 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 왕징면에 행정 편입되어 있는 법정리이다. 한국 전쟁 전까지는 서남면 행정·치안·교육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가천리

삭녕군 서면 지역으로, ‘가재울'이라는 마을이 있어 가좌동리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佳佐洞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좌동리와 형천리를 병합하여 ‘가천리'라 하여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으나, 1963년 월 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 왕징면에 편입되어 있는 하나의 법정리이다.


-냉정리

본래 삭녕군 서면 지역으로, 찬 우물이 있어 '냉정리'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지역에 속해 있으나,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 왕징면에 편입되어 있는 법정리이다. 행정리와 반이 설치되지 않은 미입주지구에 해당한다.


-고장리

본래 삭녕군 남면의 고리동리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접해 있던 오장대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하여 왕징면에 편입된 법정리이다. 행정리와 반이 설치되지 않은 미입주지구에 해당한다.


-오탄리

본래 삭녕군 남면 지역으로, ‘오장대리(五壯垈里)'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伍莊垈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탄부리를 병합하여 ‘오탄리'라 하고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임시조치법」에 의거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어 있는 법정리이다. 행정리와 반이 설치되지 않은 미입주지구에 해당한다.


-장학리

본래 삭녕군 지역으로, ‘장재울'이라는 마을이 있어 ‘장학리(獐鶴里)'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나학리를 병합하여 ‘장학리'라 하여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동란이 끝난 뒤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어 있는 법정리이다. 행정리와 반이 설치되지 않은 미입주지구에 해당한다.


-솔현리

본래 삭녕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으나,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왕징면의 법정리였으나 현재는 옛 지명만이 남아있는 미입주지구이다.


-석둔리

본래 삭녕군 서면 지역으로, ‘돗둔'이라는 마을이 있어 ‘석둔리'라 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고,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 지역에 속해 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왕징면의 법정리였으나 현재는 옛 지명만이 남아있는 미입주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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