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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의정부시, 조선의 왕 태조와 태종 “두 임금을 품은 왕의 도시”

  • 안홍필 기자
  • 입력 2026.04.15 20:06
  • 조회수 1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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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수례 (2).JPG
헌수례

 

【컨슈머저널 취재본부/안홍필 기자】 의정부의 유래는 견주란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 見州는 백제시대 때로 올라가며 매성군 또는 마홀로 불리다가 조선 건국 초까지 견주로 불린다. 


이후 의정부라는 지명은 1392년 조선 건국 초 최고의 행정 기구인 의정부(議政府)란 관청이 설치된 지역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의정부가 조선 초기 “의정부와 의정부읍”이란 행정 구역으로 왕실의 의(議)와 정무(政)를 담당하는 관청이란 뜻으로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핵심 기관으로 태조와 태종이 직접 방문하거나 명령을 내린 사례는 여러 차례 전해진다. 이후 1907년(순종 1) 내각으로 개편될 때까지 조선 관료체계 내에서 최상위의 행정・정치 기구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의정부시가 직접적인 행정 중심지였거나 정치적 거점으로 활용됐다는 역사서나 문헌상 기록은 없다. 


 

시청 앞1.JPG
시청 앞


두 임금이 행차했던 왕의 도시 의정부시와의 인연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로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아버지는 5왕자 방원이 아닌 2왕자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 그러자 불만을 품은 태종(방원)은 군사를 동원해 정도전을 살해하고, 세자를 폐위하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다. 이에 이성계는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내려갔다. 


이후 태종은 ‘2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왕이 된 태종(방원)은 아버지를 모셔 오기 위해 여러 차례 사신을 함흥으로 보낸다. 그러나 태종이 형제를 죽였다는 사실에 태조는 크게 노하여 아들이 보내는 사신들 모두를 활로 쏘아 죽이는 등 함흥으로 갔던 사람 중 아무도 살아서 돌아온 이가 없다 하여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고사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그 뒤 무학대사가 내려가 태조와 함께 지낸다. 하루는 무학대사가 “선왕이시여, 조선은 지금까지 고생하여 만드신 국가가 아닙니까? 남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같이 고생한 태종에게 주는 것이니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한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했다”. 무학대사의 말을 들은 태종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것을 고심했으며, 무학대사의 설득 끝에 마음을 돌린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다가 지금의 의정부 지역에 머물게 된다. 그때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으로 와서 태조에게 업무를 보고했다고 하여, 이 지역을 ‘의정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 개성으로 간 아버지를 맞이하고자 행차했다는 기록에서 보듯 지역적으로 한양의 서북부에 위치 농경과 군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의정부시와 두 왕과의 인연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의정부시를 재조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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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행렬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 후 경상도·전라도의 반란을 진압하고, 의정부를 중심으로 군사·조세 개편을 진행했다. 이때 의정부 관료들이 이성계에게 재정·군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왕권 강화에 기여했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1392년 조선 건국 직후 의정부를 ‘의정부·의정부읍’으로 승격하고, 신수·노수·고수 등 ‘의정부 3수’를 설치해 새로운 행정 체계를 마련했다. 이는 조선이 고려의 행정 구조를 계승·발전시키는 중요한 단계였으며, 의정부시가 ‘왕실의 행정 중심지’로 부상한 배경이다. 


-1394년 이성계는 의정부 관청에 ‘의정’이라는 직책을 신설하고, 의정부·의정부읍에 ‘의정부 전령’을 배치했다. 이는 의정부시가 조선 전역의 통신·물류망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지임을 의미한다. 


-1398년부터 1408년 태조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의정부·동우 지역에 머물며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한 비밀회의를 열었다는 전승이 있다.(※ 정확한 사료는 없으나, ‘의정부·의정부읍’이 왕실 안보에 중요한 곳이었다는 점은 여러 사료에서 확인된다.) 


- 야사·전설  

‘의정부 바위 전설’ :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현 의정부시 일대 바위 위에 ‘천하대업’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고 ‘이곳이 나의 왕업을 이룰 곳’이라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후대 지방 사학에 ‘의정부·의정부읍이 왕권을 뒷받침한 성지’라는 설화를 남겼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이 방번(芳蕃)과 방석(芳碩)을 살해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태조는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여 함흥(成興)으로 옮겼다. 이후 태종은 여러차례 사자(使者)를 보내어 용서를 빌었으나 태조는 사자를 감금, 살해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함흥(威興)의 사(使)' 또는 함흥차사라는 말이 이때부터 생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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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 동부광장
 

태종 이방원과 인연

이방원은 1400년 1차 왕위 쟁탈전(1차 왕위 전쟁) ‘의정부·의정부읍’에 비밀 군대를 배치하고, 의정부 관료들을 회유해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의정부·의정부읍’이 군사·정치의 ‘핵심 거점’이었기에, 이방원은 이곳을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했다는 증거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1401년 태종은 ‘의정부·의정부읍’에 새로운 관청인 ‘의정부 관서’를 설치하고, ‘의정부 전령’을 재조직해 지방 통제를 강화했다. 이는 이방원이 중앙·지방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의도였으며, 의정부시가 ‘왕권 강화의 실험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405년 이방원은 의정부·의정부읍에서 ‘의정부 3수’ 중 한 명인 김흥도를 발탁해 ‘의정부 전령’에 임명하고, ‘의정부 전령’을 통해 전국적인 정보망을 구축했다. 김흥도는 이후 ‘의정부 전령’으로서 태종·정조 시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418년 태종은 ‘의정부·의정부읍 왕실 연회’를 열어 지방 관료와 군사 지도자들을 초청, 왕권 강화와 충성 서약을 진행했다. 이때 ‘의정부·의정부읍’은 ‘왕실 의전·의식’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425년 태종은 의정부·의정부읍에 ‘의정부 서원’을 새로 건립하고, 관아를 확장해 교육·문화 기관을 마련함으로써 왕권 이념을 지방에 전파하려 했다. 이는 ‘의정부·의정부읍’이 ‘왕실 이념의 전파 기지’가 되었다는 야사와 일치한다. 


- 야사·전설  

‘이방원의 비밀 병서’ : 이방원이 의정부·의정부읍에 숨겨진 ‘비밀 병서’를 두고, “이곳에 적힌 전략을 실행하면 왕권을 영원히 지킬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는 ‘의정부·의정부읍’에 군사·학문을 겸비한 인재를 배치한 것이 배경이다. 


‘의정부·의정부읍의 은밀한 회담’ : 태종이 비밀리에 ‘의정부·의정부읍 회담’을 열어, 미래 왕위 계승 구도와 지방 통치 방침을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의정부·의정부읍’이 왕실 내.외부 정책을 조율하는 무대였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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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터미널


의정부시가 두 왕에게 왜 중요한가?

1. 전략적 교통·통신 요지  

• 한양(서울) 의정부는 당시 ‘한양·의정부·의정부읍’이라는 주요 도로망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이 때문에 군사·물자 이동이 용이했고, 왕실 명령을 신속히 전달할 수 있었다.


2. 경제적 비중  

• 조선 초 ‘의정부·의정부읍’은 ‘의정부·의정부읍 토지제도’에 따라 세금·곡식이 집중돼, 왕실에 핵심 재정 기반을 제공했다. 태조와 태종은 이곳을 통해 ‘의정부·의정부읍 세수’를 직접 관리하며 중앙 재정을 강화했다.


3. 정치적 영향력  

• ‘의정부·의정부읍 관료’는 지방 실권을 가진 인물들이었으며, 이들의 지지·반대가 왕위 계승과 정책 추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방원은 이들을 회유·유인함으로써 ‘의정부·의정부읍’을 ‘왕권 기반’으로 삼았다.


다만 주목해야 할 점도 있다. 조선 초기 한양 북부 지역 오늘날 의정부·양주 일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완충 지대였다. 북방 방어와 교통로 관리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왕권이 관심을 기울인 ‘배후 공간’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후대에 다양한 전설이 덧붙는다.


예컨대 “태조가 바위에 천하대업을 새겼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지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향토 설화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4. 태종 이방원, 권력 장악의 현실 정치, 그리고 ‘공간 전략’


이방원은 조선 왕권을 실질적으로 완성한 군주였다. 그는 왕자의 난을 거쳐 즉위한 뒤, 중앙 집권 체제를 강력하게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지방 도시’가 아니라 인사·군사·정보의 통제였다. 태종은 의정부를 비롯한 중앙 기구를 장악하고, 사병 혁파와 호패법 등 제도를 통해 전국을 통제했다.


현재 의정부시 일대와 관련해 전해지는 비밀 군대 배치, 은밀한 회담, 정보망 구축 같은 이야기들은 실제 정책의 ‘공간적 상상력’이 덧씌워진 결과에 가깝다. 즉, 태종이 전국을 통제했던 강력한 권력 이미지를 특정 지역에 투영한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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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1호선 의정부역
 

왜 ‘의정부’는 왕권의 상징으로 남았나


첫째, 이름 자체의 상징성

‘의정부’는 곧 최고 권력 기관을 의미했다. 이 이름이 지명으로 굳어지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왕과 직접 연결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됐다.


둘째, 지리적 위치

현재 의정부시는 한양 북부 관문에 위치한다. 조선 시대에도 이 일대는 북방으로 향하는 길목, 군사 이동 경로, 물자 유통 통로라는 성격을 지녔다. 실제 정치 중심은 아니었지만, 수도 방어와 연결된 전략적 배후지였던 셈이다.


셋째, 지역 정체성의 형성

근현대에 들어 지역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태조·태종과의 연결 서사가 강화되었다. 이는 전국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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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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