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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협치의 낯선 풍경

  • 안홍필 기자
  • 입력 2026.08.25 16:47
  • 조회수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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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얼마 전에 국회에서 후반기 원구성이 있었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직을 어느 정당이 맡느냐를 두고서 또다시 거친 실랑이가 벌어졌다. 각종 법안의 길목을 지키는 상원(上院)과도 같은 법사위의 입법 절차상 과다한 권한을 없애면 될 일인데, 이게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서로 갖겠다고 다투기만 한다.


헌법학 교과서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적시되듯이 우리 국회는 이른바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해오고 있다. 국회 안에서 법안들이 본회의가 아니라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그리고 집중적으로 다뤄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상임위 중심주의, 썰렁한 본회의장


이 상임위원회 중심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모습이 독일 연방의회(Bundestag)에서 드물게 목도되는 ‘함멜슈프룽’(Hammelsprung)이라는 제도다. 즉 ‘재(再)입장에 의한 표결방식’이다. 트로이를 함락시키고서 귀향하기까지 신들의 분노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게 되는 오디세우스가 부하들과 함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는데, 거인이 아침에 동굴 밖으로 나가는 자신의 양(Hammel)들을 한 마리씩 숫자를 세는 데서 착안한 표현이다.


독일의회 또한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본회의에서의 법안 의결에 통상적으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요구되는 것도 우리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실제의 모습은 판이하다.


법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하는 본회의장 안이 몹시 썰렁하다. 극히 일부 의원들만 앉아 있다. 그런데도 의장단은 절차를 진행하여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게 독일 연방의회의 일상적이고 흔한 풍경이다. 그런데 때로 일부 정당에서, 요즘은 극우성향의 독일대안당(AfD) 측에서 의사진행발언으로 현재 의결정족수에 미달이라며 딴지를 걸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법적으로는 타당한 지적인 까닭에 의장단은 절차를 중단하고 함멜슈프룽을 선언하면서 의원들을 본회의장 바깥으로 내보낸다.


이어서 주요 정당들의 원내대표단은 소속 의원들에게 지금 하는 일을 중단하고서 빨리 본회의장으로 (재)입장하라고 알린다. 본회의장의 주출입구에는 세 개의 문(門), 즉 찬성, 반대, 기권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문으로 입장하는 의원들 머릿수를 사무처 직원들이 헤아린다. 그리고 표결 결과는 예상대로 매한가지다.


국회 본회의장의 개근(皆勤) 여부를 따져서 의정활동 우수의원을 가리는 우리에게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법하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하다. 소관 상임위 단계에서 주요 정당들 간의 이해관계와 입장이 조율되어서 해당 법안이 본회의로 넘어갔기 때문에 다른 많은 일로 바쁜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굳이 모두가 재석(在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우리와는 달리 독일 연방의회는 아직도 전자투표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자투표시스템이 도입되면, 재석의원과 찬성, 반대의 의원 숫자가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고, 늘 재적 과반수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의회 측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는 중요한 법안을 의원들이 고작 버튼 하나 누르는 행위로 처리할 수는 없다며 이를 정당화한다.


예산위 위원장은 제1야당 몫


독일 연방의회에는 상임위원장직 배분과 관련해서도 확립된 의회 관행이 존재한다. 즉 정부 통제기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예산위원회 위원장직만큼은 제1야당 몫이다. 독일 연방의회 공식 웹사이트에서 이 관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2018년에 연방의회선거가 끝나고서 기민당/사민당 간의 대연정이 다시 들어섰다. 의원내각제 정부에서 제1당과 제2당이 연립하여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대연정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당시 연방의회에 처음 진출하고서 일약 제3당이 된 독일대안당(AfD)이 제1야당이 되었다. 대안당을 신뢰하지 않는 정치권 일각에서 대안당에게 예산위원장직을 내줄 수 없다며 반발이 거셌지만, 결국에는 확립된 의회 관행대로 되었다.


이렇듯 확립된 의회 관행이 없이 국회의 원구성 때마다 상임위원장직 배분, 특히 법사위원장직을 두고서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이 우리 국회와 정당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늘 다수당이라는 법도 없고, 선거라는 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도 이들에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그리도 어려운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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