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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편집 2024-12-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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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저널/취재본부 안홍필 기자】 연천군이 지난해 2월 20일 선정된 이후 2024년 1월 10만을 목표로 시작된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이 10월 14일 기준 100,039명을 초과 달성하며 순항 중이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이란 전국 지자체별 인구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으로 관광을 통한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일종의 명예 주민증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만들면 주어지는 혜택으로는 숙박, 식음료, 관람, 각종 체험 등 할인받을 수 있다. 현재 전국 지자체 중 최대 40개 지역에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이용객이라면 지자체별 혜택을 확인 후 이용하면 된다.


연천군은 올해 초 시작된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이 지난 2023년 12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며 연천군을 찾는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며 수개월 만에“10만”명 달성이란 쾌거를 거두며 성공적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이를 기념하고 위해 특별 이벤트를 오는 25, 26, 27일까지 디지털 관광주민증 가입자에 한 해 선착순 모집 팸투어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연천군 관계자에 따르면 2023. 10. 인구감소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한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 선정에 따라 “10만”달성에 따른 이벤트 및 홍보가 필요함에 따라 1회에 그치는 행사성 이벤트를 지양하고 연천군의 관광정책 사업 및 관광자원, 관광 비전 등을 다양한 이벤트와 매체를 통해 홍보하고자 하며, 디지털 관광주민증 가입자들에게 연천군을 재방문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했으며, 오는 2024. 11. 1.(금) ~ 11. 22.(금)까지 3주간 연천군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더 벤티와 협업해 연천군 관내 벤티 매장 포스터 홍보, 홈페이지 및 전국 매장 키오스크 화면에 ‘연천군 디지털관광주민증 10만 달성’ 홍보 등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더 벤티’ 전국 지점에서 연천 율무 음료(율무 쉐이키, 율무 오트라떼, 율무 아인슈페너)를 구매한 영수증과 연천군 내 관광지 방문 사진 혹은 연천군 내에서 사용한 영수증을 관광안내소(연천/전곡)에 함께 제출 시 3만원 이내 기념품 제공

※ 기념품: 지역 농·특산물 꾸러미 (백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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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의 디지털 관광주민증 추진 현황은 다음과 같다. 

2023. 10. 인구감소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한「디지털 관광주민증」사업 선정

2024.  1. 디지털 관광주민증 가입 및 상시 홍보(각 부서, 직속기관, 읍면 등), 군부대 방문 홍보 실시(5군단, 5사단, 25사단 등 3회)

2024.  2. 한국외식업중앙회 연천군지부 및 소상공인 대상 홍보 실시

2024.  3. 연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 참여 희망업체 모집 공고

2024.  4. 서울역사 내 디지털 관광주민증 홍보를 위한 연천군 팝업스토어 운영

2024.  5. 구석기 축제 디지털 관광주민증 홍보 부스 운영 및 가입 이벤트 진행, 한국관광공사 슬기로운 지역 생활 여행 SNS 홍보 

2024.  7. 서울 하이커그라운드 내 디지털관광주민증 홍보 부스 운영 예정


 “디지털 관광주민증”가입자를 위한 관광 팸투어 이벤트 진행으로는 다음과 같다.

 

 ▶ 디지털 관광주민증 가입자 선착순 모집 팸투어

  - 일    시: 2024. 10. 25.(금), 10. 26.(토), 10. 27.(일)

  - 대    상: 공고일 전날까지‘연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에 가입한 자의 가족

    ※ 가입한 자의 가족 (배우자 및 자녀, 직계존속), 가족이 아니더라도 접수는 가능함

  - 내    용

   1) 연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에 가입한 자에 한하여 연천 관광 팸투어 모객 공고

   2) 선착순 모객하여 10월 중 3회(25,26,27일) (1일 최대30명) 팸투어 실시 

  - 향후계획

   1) 연천군 관광 팸투어 용역사 선정 및 계약 진행 

   2) 팸투어 모객을 위한 공고 및 홍보 (한국관광공사와 협의하여 연천군 디지털관광주민증 가입 대상자 한정 문자 발송 및 대한민국 구석구석 앱 홍보)

   3) 팸투어 일정 중 주요 매체를 통한 디지털 관광주민증 및 이벤트 홍보 

 ▶ “10만번째 연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 가입자” 특별 단독 팸투어 이벤트 진행

  - 일    시: 2024. 11. 2.(토) (예정)

  - 대    상: ‘연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 10만번째 가입자 가족 (한국관광공사 협의 하에 대상자 선정 및 연락)

  - 내    용

   1) 팸투어 진행 전 군수와의 티타임 

   2) 10만번째 가입자 가족을 대상으로 특별 단독 팸투어 진행 


디지털 관광주민증 지역의 참여 업체는 총 16개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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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이 지난해 12월 전철1호선이 개통된 전후에 대해 지역상권 활성화에 미친 사항을 AI를 데이터분석을 실시한 결과에서 보듯 전철 1호선이 개통된 이후 지역에 미친 경제적 유발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연천군의 디지털 관광주민증의 효과도 일부 감안된 수치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다음은 연천지역 상권별 분석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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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의 읍면별 명소를 알면 관광하기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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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읍

- 재인폭포(才人瀑布) : 가마골 입구에 있는 높이 18.5m 폭포. 이 폭포는 많이 알려져 있듯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한 여인의 정절과 그 여인을 향한 탐욕이 낳은 슬픈 이야기가 서려 있는 장소이다. ‘여지도서’에는 이 고을 원님이 너무도 빼어난 미모를 가진 재인의 아내를 탐하고자 현재의 명칭인 재인폭포에서 재인에게 광대 줄인 외줄타기를 타게 한 후 재인이 외줄타기를 시작하여 중간쯤 갔을 때 줄을 끊어 떨어져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원님의 코를 물어뜯고 자결했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 칭하게 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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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연천현 산천조에는 옛날 재인은 아내의 미모가 뛰어나 마을 사람들이 흑심을 품고 있던 마을 사람과 함께 폭포 아래에서 놀다가 재인이 자기 재주를 믿고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말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흑심을 품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고 한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재인이 반 정도 지났을 때 마을 사람이 줄을 끊어버려 재인을 수십 길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된다. 이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재인폭포는 보개산과 한탄강의 빼어난 경관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절경을 사계절 선사하고 있는 명승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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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 댐 : 한탄강댐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와 포천시 창수면 신흥리에 위치한 길이 705m, 높이 85m, 저수용량 3억 1,100만m3, 홍수조절용량 3억 500만m3 규모의 홍수 조절용 댐이며,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 연천역(漣川驛) : 일제강점기 시절 건설된 역사. 한때 경원선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던 역이며 원산까지 가는 길에 급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급수탑이 근대문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나 현재 전철이 들어오면서 연천역사와 급수탑의 존치에 회의적인 입장도 보이고 있어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6.25 전쟁 당시 북한이 남침을 위하여 설치했다고 전해지는 탱크하역시설도 남아 있다.

- 백의리 층 : 한탄강을 따라 웅장하게 펼쳐져 있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 아래에는 청산면 백의리 일대에서 주로 발견되는 백의리 층이라 불리는 하천 자갈층을 볼 수 있다. 백의리 층은 아직 굳어지지 않은 하천 퇴적층으로 대부분 화강암, 편마암, 편암, 규암 등의 둥근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백의리 층은 옛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강물에 의해 쌓여진 것으로 이곳이 한탄강의 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자갈들이 놓인 모습을 통해 과거 한탄강의 흐름 방향도 파악할 수 있다. 백의리 층의 상부 현무암에서는 판상절리 및 주상절리를 모두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질층이다.

- 다방거리(茶房巨里) : 경원선이 계통된 이후 6.25 전쟁이 끝나고 1954년 수복 후 연천읍에 최초로 다방이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한때는 최고의 번성기를 누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표지판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 신망리(新望里)역 : 경원선 서쪽에 형성된 시가지. 이곳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5월 피난민 정착 지역으로 지정되어, 미군 제7사단에서 3만 평의 부지 위에 1세대 당330㎡의 대지에 59.4㎡ 크기의 목조 가옥 100호를 건립하여 선착순으로 피난민을 입주시켰다. 당시 연천읍에서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된 이곳을 미군들이 새로운 희망 속에 살라는 뜻의 신망리(New Hope Town)로 명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망곡산(望哭山), 연인산 : 연천역 서쪽에 있는 둥근산. 구한말 고종과 순종의 국상 때 관내 유림과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가 궁궐 쪽을 바라보고 기울어지는 국운을 안타까워하며 통곡하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연천읍의 체육공원이 조성되었으며, 또한, 2023년 전철1호선 계통에 맞춰 관광객 유입을 위한 둘레 길 및 황토 길 등 휴식을 위한 공원화 사업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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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읍

- 국사봉(國思峰), 면경산(面鏡山), 안산(案山) : 넘점고개 북쪽에 있는 높은 봉우리.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특히 함께 등과한 이방원과 교우가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 말 공조판서를 역임했으며, 고려 멸망 후 불사이군의 절개로 전곡읍 음터에 은거한 김양남은 매일 한탄강 건너에 있는 개성(송도)을 향하여 망궐례(望闕禮)를 올린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집근처에 학소정(鶴巢亭)을 짓고 산수와 더불어 평생을 고려 신하로서 고결한 절의를 지키다 일생을 마쳤다. 태종이 그의 인품에 감동되어 지평을 제수하는 등 여러 번의 부름이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다. 현재 고려 말 5충신을 모시는 의정부 송산사(悚山祠)에 배향되어 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봉우리 정상에는 두 그루의 큰 소나무와 말을 타고 군장을 갖춘 여러 무관소상(武官塑像) 위(位)를 모신 조그만 당집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모두 파괴되었다. 주변에서 묘 자리를 잡을 때 이 산을 안산으로 많이 잡는다 하여 ‘안산' 으로도 많이 불린다.

- 은대리판상절리 : 차탄천은 한반도 생성과 관련된 암석, 지질구조, 신생대 용암이 만들어낸 지형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암석은 약 4억년전 얕은 바다에서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이 지층은 미산층이라고 부르며, 암석은 2억 5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양 옆에서 미는 힘(횡압력)을 받아 물결처럼 휘어져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암석이 구겨진 모양을 습곡(fold)이라고 부른다. 습곡구조에서 차탄천 하류 왼쪽에 위치한 판상절리는 현무암이 보통 세로방향으로 절리가 발달한 주상절리와는 다르게 가로 방향으로 발달하여 마치 물고기 비늘모양의 절리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이 현무암 아래에는 클링커와 베개용암 그리고 옛 하천 자갈층인 백의리층 등이 관찰되고 있다. *클링커(clinker, 클링카)는 포틀랜드 시멘트를 만드는 원료로, 소성로에서 석회석과 점토 등이 소성, 화합되어 나오는 암록색의 잔자갈 모양의 덩어리. 태운 덩어리라는 뜻으로 소괴(燒塊)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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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곡은대리성(사적 제469호) : 은대리성은 호로고루, 당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 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 하천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1995년부터 2003년 사이 지표조사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 토기 일부가 발견되는 등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성으로 추측된다.

- 은대리물거미서식지 : 전세계적으로 물거미는 1종만이 서식하고 있으며, 한국, 중국, 일본, 유럽,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 등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는 국내에서 은대리가 유일하며 차탄천 용암지대 위에 위치한다. 몸의 크기는 일반적인 거미류가 암컷이 수컷에 비해 월등히 크지만 물거미는 수컷이 암컷보다 더 크다.(7~15mm) 몸에 많은 털이 있고 이털은 은백색 공기방울을 만들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방수역할을 한다. 물속에 있는 물풀이나 조그만 돌에 공기주머니(집)를 붙여놓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독특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전 생애를 물속에서 보내며, 수명은 우리나라에서 사는 모든 거미류와 같이 1년이다. 물거미는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며 연천군 은대리의 물거미 서식지는 세계적 휘귀정인 물거미의 국내 서식지로서는 현재까지 유일하여 1999년 9월 18일 쳔연기념물 제412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38선 표지석 : 앞쪽에 파손된 옛 38선 표지석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 미국과 소련(당시)의 합의하에 세워진 38선 표지석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김성일이 인민군과 탱크를 앞세워 이 길을 이용 남침하여 수많은 우리 국군과 민간인까지 비참하게 희생되게 했던 피로 물든 6.25전쟁으로 인해 역사적인 이 38선 표지석이 파손되어 있던 것 옆에 1991년 9월 17일 당시 홍성규 연천군수가 38선 경계비를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루게 되었다. 또한, 파손된 옛 38선 표지석은 파손 그 자체를 기념물로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평화의 의미를 전하기로 결정했다.

- 전곡리 구석기유적지 : 1978년 겨울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 왔던 미군 병사에 의해 지표에서 석기를 발견하여 당시 서울대학교 고 김원룡 교수에게 분석을 의뢰 김 교수와 영남대학교 정영화 교수에 의해 아슐리안 구석기 유물로 판명 1978년 주먹도끼와 가로날 도끼 등 아슐리안형 석기를 추가로 발견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구석기유적지로 알려지게 되면서 1979년 10월 2일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 총 11차에 걸친 발굴 작업을 통해 3000여점 이상의 유물이 채집되면서 1970년대 말까지도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으로 구석기문화를 양분하던 모비우스 학설을 뒤집는 계기가 되며, 세계 구석기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한탄강 임진강 유역에 대한 제4기 지질학 연구가 이루어지며 현재 진행형으로 지질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고고학계뿐만 아니라 지질학계에도 중요한 연구의 장을 제공하며 우리나라 대표하는 전곡리선사유적지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 선사유적지 : 한탄강이 감싸고 도는 현무암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선캠브리아기에 형성된 변성암류인 편마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을 이루며 이 암반층을 강원도 평강지역에서 분출하여 임진강과 한탄강의 강바닥에 형성된 현무암이 넓게 덮고 있다. 현무암 위에 적색 점토 퇴적층과 사질 층의 퇴적물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퇴적물의 상부 점토층이 구석기 문화층으로 석기가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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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박물관 : 2005년 건립된 경기도립박물관으로 국가적인 사적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전곡리선사유적지 선사박물관은 선사유적의 영구 보전과 선사시대 역사 · 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 및 문화명소로 만들기 위해 건립되었다.

- 한탄강관광지 : 처음 국민관광유원지로 지정된 것은 1977년 3월 31일로, 당시 지정 면적은 359만 4,000m²이었다. 이후 1983년 12월 17일 31만 2,000m²의 지역에 유원지 조성이 실시되었고, 1988년 11월 29일 국민관광지로 재차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1만 2,000m²다. 현재는 조성변경 용역으로 2004년 11월에 조성계획 변경 용역을 마치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조성을 완료 연천군의 대표 캠핑 관광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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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징면

- 은거당터 : 미수 허목 선생의 생가터로 말년에 자연을 벗 삼아 저술활동을 주로 하던 곳. 허목이 84세가 되던 해인 1678년(숙종 4) 국가에 공이 많은 신하를 예우하기 위하여 왕명의 특전으로 건립된 7칸 규모의 가옥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건물은 전소하였으며 남아 있던 정원의 괴석과 희귀목들은 모두 밀반출되었다.

- 스무스장거리의 주막(峨嵋山秋月) : 왕징면 무등리 면사무소가 소재한 곳. 옛 마전군의 빼어난 풍광을 ‘지산팔경’이라 칭하고 시를 읊은 팔경 중의 한 곳이었으나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다. 

- 화이트교.무등교 : 군남면 진상리와 연결해 주던 임진강 다리로 한국전쟁 당시 전곡리를 탈환하고 개성방향으로 진격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이곳 임진강에 당도해 보니 인력과 장비가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없어 도하작전이 지연되자 당시 미군 공병대대의 장교인 화이트(White) 소령이 나무를 급조하여 놓은 나무다리라 하여 화이트교라 칭하여 지금까지 불리우고 있다. 다리는 통나무 교각에 나무판자를 깐 좁은 노폭이었으나, 1970년 잠수교 현재의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하여 사용하다가 임진교가 새로 건립되어 사용하고 있다. 관광객 및 주민들이 사용하였으나 장마 기간이면 방송사들이 찾아오는 등 지역의 흉물로 변해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해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임진강 수위가 낮아지면 설치한 흔적만이 남아 있다. 

- 징파나루 : 60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징파나루에는 당시 태조 이성계가 잔치를 벌이던 정자는 사라졌고 정자 옆 느티나무만이 남아 있다. 북삼리와 삼거리를 이어주는 임진강의 큰 나루터. 북삼교를 가설한 이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정약용의 ‘대동수경’에 의하면, 이곳의 강물은 강바닥의 자갈이 훤히 비칠 정도로 빛깔이 맑다하여 징파강이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 우화정(羽化亭) : 미수 허목에 이어 소동파 겸재 정선까지 큰선비가 연천을 품다. 청천 신유한(靑泉 申維翰 1681~1752)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백성을 구휼하는데도 힘썼다. 그가 부임하던 해인 1739년(영조 15)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와 양천현령 겸재 정선까지 세 사람이 삭녕에서 연천의 웅연까지 배를 타고 술과 시와 음악을 나눌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화정에서 웅연까지 미수 허목이 시와 기행문을 자세히 쓴 명소로 은거당을 내왕하며 발자취를 남긴 지역으로 미수의 바위 글씨가 있는 곳이 웅연이며, 웅연 언덕 위 정자인 취우당에도 그가 우연히 들러 쓴 시가 있었다. 하류 쪽의 징파나루는 그가 나들이를 가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했다고 해서 ‘미수나루’라고 했을 정도. 우화정을 건축한 삭녕군수 이산뢰는 미수의 각별한 제자였으며, 미수의 자취를 찾아다닌 신유한이나 홍경보 모두 남인계 문인이다. 현재는 임진강 북쪽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관람을 할 수는 없다.

- 북삼리 석조여래입상 : 북삼리 석조여래입상은 광배 상단 부분과 두부가 심하게 파손된 상태며 나머지 부분은 양호한 상태, 전체적으로 양감이 떨어지고 저부조로 조각했다. 두부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큰 편이며, 목이 매우 짧아서 마치 얼굴과 어깨가 붙어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고 법의는 통견이다. 입상의 앞에는 지름 90cm의 원형 연화대좌가 배치되어 있는데 대좌 중앙에 턱진 부분에 입상을 올려놓았을 것으로 추전하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양식적으로 평면적이고 신체표현이 약간 어색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부정되고 있다. 석조여래입상은 본래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150m떨어진 민가에 있던 것을 2009년 이곳 나룻터마을로 옮겨져 관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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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면

- 개안마루 :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장님이 눈을 떴다는 전설이 내려오던 곳이란 전설과 함께, 아름다운 선녀가 연못의 절경에 빠져 몰래 내려와 놀다 갔다는 여울목”을 품고 있다. 임진강의 동쪽 주변을 감싸고 형성되어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며 옥녀봉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안마루는 연천군 사계 중 언제 찾아와도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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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녀봉 그리팅맨 : 2016년 4월 유영호 조각가의 작품으로 “높이 10m로 북쪽을 바라보고 인사하는 형상으로 통일을 바라는 마음과 북한 사람들과 한마음 한뜻을 모아 전세계 유일의 분단으로 갈라져 있는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며, 분단국인 “대한민국에서 전세계인에게 평화메시지”를 전하고자 설치됐다. 연천군 옥녀봉에 설치된 그리팅맨 주변으로 펼쳐진 ‘연천군의 360˚를 조망’할 수 있으며, “인사하는 방향으로 불과 4km 앞에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임진강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옛 “선조들이 풍류에 감탄되어 읊조리던 시 한 소절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팅맨은 2012년 지구의 반대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첫 작품이 설치된 이후 현재 연천군 중면 옥녀봉과 양구 해안면, 제주도 서귀포에 설치’되어 있다. 몬테비데오에 첫 작품이 설치된 후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과 제주도 서귀포에 2호 3호가 차례로 설치되었고, 이곳 연천에 설치된 그리팅맨은 역대 최대인 10M 크기로 세계평화의 메카가 될 것이라고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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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전망대는 천하무적 태풍부대에서 1991년 12월 3일 건립한 것으로, 서울에서 약 65km, 평양에서 약 140km 떨어진 중면 비끼산의 가장 높은 수리봉에 위치한다. 처음에는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2km 지점에 남방 한계선과 북방 한계선이 설정되었으나, 1968년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철책을 설치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1978년에 부분적으로 철책을 설치했다. “시계가 좋은 날에는 망원경 없이도 밭일하는 북한주민”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휴전선까지 800m, 북한 초소까지는 1,600m의 거리에 떨어져 위치하고 155마일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하다. 태풍전망대에는 국군 장병들이 종교 집회를 가질 수 있는 교회·성당·성모상·법당·종각 등이 있고 북녘에 고향을 두고 떠나온 실향민의 망향비와 한국전쟁의 전적비, 6.25참전 소년전차병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시관에는 이곳으로부터 2km 떨어진 임진강 필승 교에서 수습한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일용품, 그리고 휴전 이후 수십 회에 걸쳐 침투한 무장 간첩들이 이용한 침투 장비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댑싸리정원 : 군남댐 건설 후 수몰지에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이 번성하자 이를 차단하고자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 25,000평 규모에 정원을 조성 “댑싸리와 각종 초화류인 백일홍, 코스모스 등을 식재하면서 가족 연인과 조용히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기면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연천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른 장소”로 서울 근교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좋은 곳이며, 4계절을 주제로 특색 있는 마을 만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봄을 주제로 홍도화를, 여름을 주제로 한 연꽃을, 가을을 주제로 한 댑싸리와 겨울을 주제로 한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관람 등을 더욱 확대 운영을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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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면 

- 어수정(御水井) : 숭의전 입구에 있는 우물,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과 철원을 왕래하면서 중간 지점이었던 앙암사(仰巖寺, 현 숭의전 자리)에서 쉬면서 마셨던 우물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또, 아미리 ‘옻샘’이 있는데, 이곳의 ‘약수는 신비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숭의전 : 강바닥의 자갈이 훤하게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 하여 징파강이라 하였던 임진강. 그러나 고려 우왕 11년(1385), 징파강에는 누렇게 흐린 물이 3일 동안 흘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되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고려의 왕씨들은 행여 훼손이 되거나 모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태조 왕건의 위패를 가져다가 돌배에 실어 예성강에 띄워 보냈다. 배는 바다로 나갔다 역류하여 동이리 임진강가에 멈췄다. 돌배에 탔던 사람들은 이곳이 길지라는 생각에 배를 쇠밧줄로 매어놓고 위패를 모실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밧줄은 썩어 끊어졌고 황급히 배를 찾으니 배는 하류의 잠두봉 절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침 그곳은 태조 왕건이 종종 기도를 드리러 왔던 앙암사가 있었다. 배가 닿은 곳 절벽 위에 사람들은 건물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는 숭의전이라 했다. 왕씨의 후손으로 하여금 숭의전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후손을 찾던 중 충청도 공주에서 왕씨의 후손인 제우지를 어렵게 발견하고 왕순례로 계명시켜 숭의전의 제사를 모실 숭의전부사로 임명장을 내려 숭의전지를 지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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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리주상절리 : 연천 동이리(임진강)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 67-1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도감포)에서부터 북쪽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수 킬로미터에 걸쳐 아름다운 수직의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홍적세 중기 무렵 철원 북쪽에서 분출한 용암은 철원-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는데 화산활동이 끝난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게 되자 강을 따라 기하학적인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주상절리의 절벽이 담쟁이와 돌단풍으로 석양빛에 붉게 보인다하여 적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이리주상절리는 지질학적으로 추가령 구조곡이 관통하는 곳으로 구조곡을 따라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선캠브리안기에서 신생대 말까지 우리나라 지질시대의 거의 모든 암석 표본과 지질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신생대 말엽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는 내륙지역에서 강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주상절리대로 DMZ 생태체험관광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지질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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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포성 :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면이 절벽이기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면(동쪽)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침입을 차단하는 방어시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로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나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 올린 토심석축의 구조이다. 중심 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앞에는 폭 6m, 깊이 3m의 구덩이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했다. 동벽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 홈이 관찰되는데, 중국 내의 환도산성, 패왕조산성, 흑구산성, 평양의 대성산성 등 고구려의 산성들에서 확인된 바 있는 특징들이 있다. 특히, 당포성 동벽에서는 수직의 기둥 홈이 하부의 확과 세트를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는 성벽의 훼손 및 붕괴 위험이 있어 흙을 덮고 잔디를 식재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 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으며, 임진강 하루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으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구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포성은 고구려 시기에 처음 축조되었으나 신라가 점령한 후에는 성벽을 고쳐 쌓아 계속 사용했다. 이 때문에 성배부에서는 고구려기와와 함께 신라의 기와들이 상당수 출토되었다.

 또한, 당포성은 고구려시대 임진강변에 돌로 쌍은 평지성이다.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의 절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임진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수 km에 달하는 수직절벽은 현무암 주상절리로 되어 있으며 높이 20여m에 달하는 등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아도 적을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 성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평지로 연결된 부분만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해 쌓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연천군 일대의 고구려 성의 특징 중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당포성의 남쪽 성벽인 주상절리 절벽은 다양한 주상절리의 모양과 함께 하천의 침식작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정발장군묘 : 정발(鄭撥, 1553년 ~ 1592년 5월 23일(음력 4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1579년(선조 12년) 무과에 급제해 해남현감, 거제현령, 북정원수 종사관, 거제현령, 비변사낭관, 위원군수, 훈련원첨정, 사복시첨정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당시의 벼슬이 정3품 행 절충장군 경상좌도 부산진 수군첨절제사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 때 벌어진 첫 전투인 부산진 전투에서 부산진수군첨절제사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정규군 800여명, 백성 2200여명과 함께 맞서 싸우던 중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리고 부산성이 함락되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흑의장군으로도 불렸다. 

그의 애마(愛馬)인 용상(龍嘗)이 투구와 갑옷을 생가까지 물고 달려왔다. 사후 시신을 찾지 못하여 투구와 갑옷만으로 경기도 연천군 마전면 백석리 새릉에 의관장(衣冠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초량역 근처에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임란이 끝나고 그의 생가가 있던 광동리 너븐골 근처에는 조정에서 내린 불천위(不遷位)의 은전으로 별묘(別廟)가 건립되고, 1683년(숙종 9) 미산면 백석리 묘소로 가는 길 입구 비문(숙종 때 송시열이 지었으나 유실)과 함께 충신정려문이 세워졌으며, 한국전쟁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 1982년에 후손들이 다시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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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면

- 두일장거리(斗日場巨里) : 만가대산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 두일장이 열렸던 곳이었으나 여름에 임진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이곳까지 역류하여 장이 설 수 없자 장거리를 지금의 두일장 자리로 옮긴 후 이곳이 구장거리라 무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화산동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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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 땅굴 : 백령리 929-1, 1974년 11월 15일 발견된 남침용 땅굴이다. 선임하사 구중섭이 지휘하는 육군 수색조가 임무수행 중에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수상히 여겨 그 곳을 파던 중에 북한 초소로부터 갑작스런 사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 군도 응사하면서 조사를 계속한 결과 남침용 땅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땅굴은 서울로부터 52km, 개성으로부터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지표에서 2.5m ~ 4.5m 깊이이며 철근이 세 가닥 들어간 조립식 콘크리트를 사다리꼴로 엮어 튼튼하게 만들었다. 땅굴을 판 목적은 남침 1시간 내에 1개 연대 규모를 침투시키고 남파 간첩의 비밀 통로로 이용하여 요인의 납북을 돕는 통로 및 우리 군의 기밀을 탐지해 내기 위한 것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어 남북이 서로 비방을 중지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모색하고자 다정하게 손을 잡던 시기여서 우리 국민의 충격은 몹시 컸으며, 동시에 북한의 양면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고 있다. 제1땅굴은 비무장지대에 위치하여 접근이 불가한 관계로 상승전망대에 제1땅굴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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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승전망대 : 백령리 642-4, 상승전망대는 적의 활동을 관측하기 위해 운용되는 최전방 관측소로 경계임무는 비룡부대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24시간 빈틈없이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초소의 망원경으로 전방의 북한 초소들과 철책선들 그리고 지금은 비무장지대로 변해서 접근이 불가능한 넓은 연천평야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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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면

- 1.21 무장공비침투로 : 고랑포에서 서남쪽으로 3.5km지점에 위치한 무장공비침투로는 1968년 1월 17일 23시 북한군 제124군 소속 김신조 외 30명이 남방 한계선을 넘어 침투한 곳이다. 1968년 1월 21일 서울로 잠입 대통령 관저(청와대) 폭파와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시설을 파괴하려고 했으나, 1968년 1월 19일 21시경 파주 법원리 주민의 신고로 군·경 합동으로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1968년 1월 20일부터 1월 30일까지 펼쳐 사상자 29명, 도주 1명과 1명(김신조)가 체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현재 무장공비침투로에는 그 당시 이곳에 주둔한 미군 제2사단 방책선 경계부대에서 설치한 경계 철책과 철조망을 뚫고 침투한 무장공비의 모형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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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랑포구 역사박물관 : 고랑포구 역사공원은 고랑포구의 새겨진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살린 가상·증강현실을 통해 실감나는 역사 및 안보 체험이 가능하며 아이들의 놀이공간과 다목적 공간(식사장소 포함) 및 세미나실로 구성되어 있다. 총 4개의 안내 및 관람구역으로 구성되었으며 관람은 ‘만남의 찰라’ ‘삶의 찰라’ ‘역사와 문화의 찰라’ ‘오감의 찰라’ 순서로 진행된다.

- 경순왕릉 : 고랑포리 산18-2, 은 문성왕의 6대손으로 927년 후백제의 견훤의 침공으로 경애왕이 승하하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라의 마지막 왕이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조선 영조 때 다시 찾게 되었으며, 신라왕릉 중 경주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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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로고루성 : 호로고루(사적 제 467호)는 강안평지성(강가 언덕 위의 평지에 세워진 성)으로 임진강 현무암 천연절벽 위에 있는 고구려성이다. 호로고루는 남한지역에 얼마 되지 않는 고구려유적. 이 성은 고구려가 남진을 하기 위해 육로로 내려오는 최단 코스로 남진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으며, 성을 접해 흐르는 임진강과 주변의 풍광이 어우러져 신성한 면모마저 보이고 있다. 호로고루는 얕은 구릉 위에 축조된 성으로 삼각형 모양을 띠고 있으며 전체 둘레는 401m이다. 성이 위치한 지역은 삼국시대에 북진과 남진을 하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삼국의 전투기록이 남아 있다. 유물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출토되었으며 특히, 고구려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임진강 유역에는 강가 절벽에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높이 10~15m 정도의 수직절벽이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강가 절벽의 구릉에 성을 축조할 경우, 수직절벽을 이용해 특별히 성벽을 쌓지 않더라도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를 제공한다. 호로고루에서는 고구려 기와가 다량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인들이 만든 기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시 기와가 왕궁이나 사찰 등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건물에만 사용되었던 건축자재였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호로고루는 다른 성들보다 그 위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성 안에서 출토되는 와당, 토기, 다양한 동물 뼈들을 통해 이 유적이 단순한 군사적 기능을 뛰어 넘어 당시 고구려인들의 정신적 부분까지도 다스리는 성스런 장소였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승전OP : 육군 비룡부대의 또 다른 관측소, 관측소 주변 비무장지대에는 독수리, 참매, 노루, 산양 등 일반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망원경으로 북쪽을 관측하면 북측 초소 군인들의 얼굴과 움직임도 볼 수 있고, 시간대별로 북측의 대남 방송을 들을 수 있어 그야말로 최전방 관측소라 할 수 있다.

- 네바다전초기지 : 네바다 전초 전투는 1953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판문점 동북방 16km 지점인 현(現)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지역인 네바다 전초를 방어 중이던 美 해병 제1사단 제5해병연대가 전초진지로 침공한 중공군 제120사단을 격퇴하기 위하여 전개한 방어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미 제5해병연대는 3월 26일 밤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베가스 전초와 레노 전초를 상실한 후, 제7해병연대 1개 대대와 포병 및 공군의 지원 하에 역습을 감행하였으나 되찾지 못했다. 이에 미군은 레노 전초 탈환을 일단 보류하고 베가스 전초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목표를 탈취하였으며, 그 후 중공군이 3일 동안에 걸친 재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미해병대는 끝까지 베가스 전초를 확보하고 중공군 제 120사단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의 사상자 수는 1,3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美 해병 부대도 118명이 전사하고 801명 부상에 실종 98명의 손실을 입었다. 베가스 전초는 가히 피로 지킨 고지였다.

- 레클리스 : 레클리스(Reckless, 한국명:아침 해) 하사는 6.25전쟁 당시 전장의 최일선에서 탄약과 무기를 수송하며 임무를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활약해 미군 병사들이 무모한이라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라 새로이 붙여주었으며, 미국 해병대 역사상 최초로 사람이 아닌 동물에 부사관으로 임명 미군에 공식적으로 등재된 군마이다.

아침 해는 원래 전쟁 전에는 서울 신설동 서울경마장에서 경주마로 지내온 몽골리안 암말이다. 수송용 군마를 구하던 미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화기소대 에릭 페더슨(Eric Pederson) 중위에 의해 1952년 10월 26일자로 미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다. 이후, 아침 해는 전투 중 탄약을 운반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인 탄약수송병을 맡아 5일간 전투 중에 약400kg의 탄약과 무기를 적의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총386회, 거리로는 56km를 탄약보급소에서 산 정상까지 왕복하면서 총알과 포탄이 날아오는 전장에서 무거운 탄약더미를 부지런히 나른다. 임무 중 부상을 입은 경우에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자 레클리스는 해병대로 입대시킨 에릭 중위와 함께 1954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캠프 펜들턴에서 지내게 되었으며, 레클라스의 용맹한 활약상을 들은 랜돌프 해병1사단장은 1957년 E-6( Staff Sergeant)로 진급하게 되었고, 1959년 성대한 전역식을 치르며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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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 초성리산성(대전리산성) : 청산면의 초성리(哨城里)산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타원형 변성암(變成岩) 석재로 지어진 둘레 100m 내외의 삼국시대의 산성(山城)이다. 정상부에 군용 참호가 구축되면서 훼손되었으며 성벽 또한 모두 붕괴하였으나 최근에 만들어진 참호벽 단면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약간 출토되었다. 또한, 성의 내부에서 백제와 신라계통의 연질(軟質) 및 경질(硬質) 토기 조각 등이 수습되기도 했다.

이 성은 신라가 당나라 대군을 격멸시켰던 매소성전투와도 관련이 있어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구실을 수행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북쪽 벽이 견고하게 지어진 것으로 보아 전곡(典谷) 방향에서 남하하는 세력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673년 사망한 신라 명장 김유신의 둘째 아들 김원술이 보병 3만을 이끌고 매소성의 당나라군을 격파하기 위해 공격한다. 신라군은 최강무장 당나라 기병에 맞서 장창병, 노병, 쇠뇌 등으로 대항한다. 당시 신라군은 매소성 주위 초성리산성, 초성리토성, 수철성 등 3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신라군은 달려오는 당나라 기병에 대항해 긴 창을 이용해 당나라 기병을 무찌른다. 또한, 신라군은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천성을 공격해 천성 전투를 치러 승리하면서 매소성 20만 당나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인근 협곡의 산성까지 진을 쳐 당나라 기병과 정면 승부를 벌여 승리하면서 매소성을 함락시킨 신라는 이 전투에서 당나라군을 거의 전멸시키고 말 3만 380필과 3만 명분의 무기도 빼앗는다. 그 후 676년 기벌포 해전에서도 승리하면서 나당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종결되어 신라는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

- 아우라지 : 북한의 평강 오리산에서 분출한 현무암질 용암이 옛 한탄강 유로를 따라 흐르다가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급랭하여 형성되었으며, 연천군 전곡읍·청산면 및 포천시 창수면의 경계를 이룬다. ‘아우라지’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주로 하천이 합류하는 곳을 말한다.

- 좌상바위 : 한탄강에 약 60m 높이로 우뚝 솟은 좌상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이다. 주변 마을에서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신성시 했다.

- 아우라지 베개용암 : 용암이 물속에서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구조로 단면이 동그란 베개모양을 하고 있다. 내륙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드문 형태의 용암으로, 용암이 옛 한탄강을 따라 흘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인함묘 : 능안(陵內洞, 白虎里) : 뚝박골 북쪽에 있던 마을. 1666년(현종 7)경 죽재 윤인함의 손자이며 승정원의 승지를 지낸 윤유진이 아들 7형제 중 효성이 가장 지극했던 만경(曼卿)과 순경(舜卿) 두 아들에게 여러 선영의 시묘를 명하여 이곳으로 이주하게 하였다. 두 형제는 두둑말에 정착하였으나 도둑떼의 등살에 지금의 능안으로 옮겨 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윤씨 선대의 큰 묘가 많아지면서 ‘능내동’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호리의 유래는 전해오지 않지만 한국전쟁 전까지도 ‘백호능안’이라는 이름이 보편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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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남면

-도감포(합수머리) 상선 군남면 옥계리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강안 석벽이 절경을 이룬다. 지산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 옥녀봉, 배꼽봉, 성산 : 높이 205m로 중면 삼곶리의 경계가 된다. 삭녕에서 연천 북쪽으로 내려오던 산맥이 연천읍 상리에 있는 솟을봉에서 두 갈래로 졌으며, 좌측으로 내려온 산맥은 남자의 정기라 하여 가장 높은 봉우리를 군자산이라 하고, 우측 산맥의 최고봉 봉우리를 여자로 의인화하여 옥녀봉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의 빼어난 경치 때문에 선녀가 놀았다 하여 ‘옥녀봉’이 되었다고 하며, 산의 모양이 배꼽을 닮았다하여 ‘배꼽봉’으로 불리 운다. 지정학적인 중요성으로 인하여 삼국 초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이다. 현재 산 정산에 산성의 유지와 우물이 남아 있으며, 중면과 경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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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남홍수조절지 : 임진강유역 홍수대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군남홍수조절지(길이 658m, 높이 26m)는 홍수와 북한의 황강댐 영향으로부터 국민의 소중한 재산과 인명을 지키고 있다. 댐 상류는 천연기념물인 두루미의 국내 주요 서식지로서 두루미를 스토리텔링화한 두루미테마파크를 댐 좌우에 조성했다. 또한, 어류자원 보존과 생태환경 복원을 위해 어도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등 친환경 시설물을 도입하여 생태관광 명소이자 생태학습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개안마루.여울목 : “주변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장님이 눈을 떴다는 전설이 내려오던 곳이란 전설과 함께, 아름다운 선녀가 연못의 절경에 빠져 몰래 내려와 놀다갔다는 여울목”을 품고 있다. 임진강의 동쪽을 주변을 감싸고 형성되어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며 옥녀봉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개안마루는 연천군 사계 중 언제 찾아와도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할 것”이다. 군남면과 중면의 경계에 위치

- 화이트교 : 군남면과 왕징면을 잇던 다리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목을 계기로 UN군과 국군이 북진 중에 개성을 목전에 두고 임진강에 다리가 없어 도하작전이 늦어지자 미군 공병대대 화이트 소령이 나무를 놓아 도하를 했다하여 화이트 소령의 이름을 따 화이트교라 불려 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다리는 노폭이 좁고 높았으나, 1970년에 난간이 없는 잠수교형식의 콘크리트 다리로 처음의 다리보다 4m 정도 낮추어 만들었다. 현재는 사라지고 아래쪽에 임진교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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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서면 

- 통일을 염원한 숲 조성, 3번 국도를 타고 신서면 대광리를 지나 철원군 쪽으로 가는 길목에 통일을 염원하는 숲이 있다. 잣나무를 식재할 때 커다랗게 ‘통’자와 ‘일’자의 형태를 이루도록 했다. 백녹색의 짙은 빛깔을 띠는 잣나무의 수관이 모이고 모여 주위의 낙엽송림 또는 참나무림의 옅은 색깔과 대비를 이루며, 우리민족의 염원을 위해 식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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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고드름 : 연천 역고드름은 “경원선 신탄리역에서 북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고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1945년 일제 강점기 당시 용산-원산 간 철로로 높이 4m, 길이 100여m, 폭 10m로 잇는 철로를 건설하던 중 일본이 패망하면서 방치된 폐 터널”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탄약고로 사용되었으며 양민학살 현장으로 알려지는 등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상부에 균열이 생겨 겨울철에 터널 안으로 물이 떨어지고 터널내부의 독특한 자연현상 만들어 놓은 수백 개의 다양한 형태의 역고드름이 자란다는 사실은 2005년 마을의 주민들의 제보로 알려지게 되었다.

매년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땅에서 솟아오르는 종유석 모양의 역고드름과 천장에 매달린 고드름 1천여 개가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어 관광자원화에 이바지하며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겨울철 처마 끝에서 아래로 자라는 모습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역고드름은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자라기 때문에 그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아 왔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고드름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최근 연구결과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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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쇠전망대 : 육군 열쇠부대가 북녘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역에 안보교육 및 망향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1998년 4월 11일 건립했다. 내부 전시실에는 북한의 생활용품과 군사장비가 전시되어 있다.

- 고대산 : 현재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산행지로 수려한 멋을 자랑하는 연천군의 대표 명산이다. 해발 832.1m의 정상에서는 철원평화와 북녘땅을 볼 수 있으며, 현재 개설된 3개의 등산로는 각각 독특한 형태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새해 첫날 맞는 고대봉 정상에서 보는 일출은 또 다른 장관을 안겨준다.

- 고대산 자연휴양림 : 2017년 개장 3번국도 및 경원선 신탄리역이 근접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접경지역 특유의 맑고 고요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주요 시설물로는 숲속의집 13동, 산림휴양관 1동 6실, 숲속수련원 1동, 야영장 20개소, 공중화장실 및 취사장 1동을 갖추고 있다.

- 경원선 철도중단점 푯말(신서면 대광2리), 남북분단 전까지 경원선은 용산을 기점으로 원산에 이르는 철도이다. 그러나 분단이후 철도는 더 이상 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되어 이를 알리기 위해 푯말이 세워졌다. 휴전선에서 약 9.5km 떨어진 남한 최북단 구 신탄리역 내에 서 있는 높이 3m의 철제판으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된 신탄리역 역사는 1961년 11월 현재의 역사로 다시 건립되었으나, 경원선은 아직도 ”불구의 철“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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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천 전투기념비(터키), 장승천 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3일까지 현재 5사단 작전지역에서 미25사단에 배치된 터키군이 수행해 성공적인 작전으로 동막골을 흐르는 장승천을 인용해 명명됐으며, 터키군 425고지 방어중대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각개행동으로 돌파하였으며, 다라미고개 정상에 배치된 경계소대는 전멸하는 순간까지 치열한 전투로 결정적인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후방의 미군과 프랑스 및 필리핀군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 차후 반격작전이 가능하도록 기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6명이 전사하고 105명이 실종되었으며 35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25사단이 추계한 총 전과는 중공군 약 1,000여명을 사살하고 2,000여명에게 피해를 입힌 격전지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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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연천군, 디지털 관광주민증 10만 달성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생활 인구 증가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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